뭔가 나쁜 일을 꾸미거나 옳바르지 못한 일을 행할 때, 비록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아니해도, 스스로 '나는 죄인이다.'라고 느낀다.  '나는 죄인이다.' 라고 느끼는 이유는 양심이 악한 행동을 고발해서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책'하게 된다. 자책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그 자신은 파멸에 이른다. 그러므로 자책하지 않고 잘못된 행동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한다. 

바울은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내 양심에 조금도 거리끼는 일이 없다 (고전4:4)." 바울도 사람으로 죄책이 있을텐데 어떻게 양심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사람은 죄된 생각이나 행동이 있기마련이다. 삶의 여기저기에 연기와 같이 뿌연 죄악이 만연되어 있는데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라고 말하는 바울의 말은 이상할 뿐이다.

바울이 이를 의식해서인지 다음과 같이 부언 설명한다. "... 그렇다고 그것이 내가 죄없이 의롭다는 뜻은 아니다." 즉 바울은 자신의 죄악에 대해 양심의 거리낌을 느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왜 앞 뒤가 맞지 않는, 즉,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해놓고서, 자신은 죄없이 의롭다는 말이 아니라는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바울 자신으로부터 들을 수 있다. 바울은 "나를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시다!." "주님은 나의 양심보다 더 크신 분이시다!" 라고 한 마디로 설명한다.

죄인이 느끼는 죄책은 양심상 인간적으로 느끼는 것일 뿐이다. 또한 사람들이 그러한 죄인에 대해 손가락질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신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도 죄를 미워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죄책에 시달리다가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렇게 살아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기가막힌 방법이 있는데, 바로 '회개'다. 회개는 죄책을 지우는 지우개이다. 회개가 죄인에게 덧 씌우지면 하나님은 그 죄인을 더 이상 죄인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보신다. 이 얼마나 놀라운 현상인가!

바울의 말이 이제 이해되는가? 바울의 말을 다시 풀이하면, "나는 죄를 지은 죄인이다. 그렇다고해서 죄책에 시달려 살지는 않겠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이상 양심에 과거의 죄악으로 거리낌이 없다!" 바울은 돈을 들고 집을 나갔다 방탕하게 탕진한 아들이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기꺼이 살진 양으로 잔치를 벌인 아버지의 사랑을 믿었다. 죄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타인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또 하나의 죄이다.


Posted by SEEK YE FIRST 예수네 트랙백 0 : 댓글 0